소설 쓰는 최은영입니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최은영입니다.

윤이형 작가님의 입장문을 읽고 한 사람의 동료 작가로서 안타까움과 슬픔, 분노를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왜 반성해야 할 사람들은 반성하지 않고,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사과하지 않고 부당함에 피해를 입은 작가가 절필을 선언해야 했을까요. 지금까지의 저의 침묵이 윤이형 작가님의 고통에 한몫한 것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 하루였습니다

작가는 소설로 말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작가라는 사람이 정작 현실 속의 인간이 고통받을 때 말하지 않고, 쓰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도 이 문단이라는 곳의 구성원으로서 윤이형 작가님의 절필에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지난 132020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문학사상사 관계자께서는 우수상 수상의 조건을 우수상 선정작을 제 단행본의 표제작으로 쓸 수 없음’, ‘3년간 모든 종류의 단행본에 실을 수 없음이라고 전하셨습니다. 동의서를 이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하고 우수상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메일을 열고 동의서를 세심히 확인해보니 ‘3년간 문학사상에 저작권을 양도함이라는 항목이 있더군요. 저는 문학사상에 전화해서 이 조항이 수정 가능한 것인지 여쭈었지만 이것은 관행이며 작년에도 우수상 수상작에 이런 조건이 붙었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저는 작년에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기에, 작년에는 이런 조건이 없었다는 말씀을 드렸지만 이는 저의 착오였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이 모든 단행본에 수록될 수 없다면, 다른 수상 작품집에도 들어갈 수 없는지물었고, 담당자는 이사님과 논의했다며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받았으므로 다른 상의 중복 수상이 불가능하며 다른 수상 작품집에 작품이 실리는 것도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담당자는 수 시간도 기다려줄 수 없다. 월요일에 기자 간담회가 있다라며 우수상 수상 여부를 빨리 결정하라고 하셨고, 저는 우수상을 받지 않겠다는 요지의 이메일을 드렸습니다.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답신을 받지 못하였고, 몇 분 후에 작가님 마음 푸세요라는 가벼운 전화 연락을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하루가 지나 김금희 작가님께서 저에게 작년에도 이런 조항이 있었는지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저는 작년에는 이런 조항이 없었다고 답을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년 저의 이메일을 확인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작년에 문학사상에서 보낸 동의서에도 같은 항목의 제약이 있었습니다. 이는 제 불찰입니다. 저는 제 작품이 현대문학상, 문학동네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등의 문학상의 우수작으로 선정된 경험이 있었고, 이상문학상의 조항과 같은 조항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동의서에 그런 내용이 실릴 것이라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채로 수상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 부분은 저의 불찰입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고, 저는 작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던 사실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분별없이 수상에 동의하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기에 올해의 수상 작가님들에게까지 피해가 갔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16일에 이상문학상에 관한 첫 기사가 나오고 나서 저에게 많은 기자님들이 연락을 주셨습니다. 기자님들은 그러면 작년에는 왜 상을 받은 것이냐고 물으셨고, 저는 동의서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중요한 서류를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은 저의 안일함이 잘못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애초에 출판사에서 그런 조항을 작가에게 제시하리라고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 출판사의 고의적인 행동과 동급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들은 계속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사람들입니다. 우수상 수상자였던 저조차도 작년에 우수상을 받았던 저의 안일함을 지난 몇 주간 돌아보며 채찍질했는데, 대상을 받으셨던 윤이형 작가님이 느꼈을 충격은 얼마나 큰 것이었을지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작품이 훼손되었다고 느끼실 정도의 충격이 무엇이었을까요. 작가님은 작가가 아닌 사람으로 글을 쓰지 않고 살아가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 때만 온전한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동료 작가로서, 한 사람의 독자로서 윤이형 작가님과, 윤이형 작가님의 문학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책임을 직원 개인의 실수로 몰아가며 자신들의 부당한 행동을 반성하지 않는 문학사상사에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합니다. 저는 담당자와 통화하며 이사님과 회의를 했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이제 그 이사님이라는 분이 말씀하실 차례인 것 같군요. 시간을 두고 이번 사태를 유야무야 넘겨보려는 동안 이미 너무 많은 작가들이 상처받았습니다. 문학사상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한 사과를 하십시오. 그것이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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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안녕하세요, 저는 포항공과대학교 창의it융합공학과 20학번 이주영이라고 합니다.
    우선, 작성하신 글을 비롯한 관련 기사들을 읽어 보았습니다. 해당 사건에 안타까움을 느끼며, 원만히 해결되었기를 바랍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메일을 통한 인터뷰를 요청드려도 되는지 여쭤보고자 이렇게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저희 학과 수업 중 자신의 꿈을 찾아가고 성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PGS(Personal Growth Statement)라는 수업이 있습니다.
    그 수업의 과제 중 하나로 '외부 멘토 인터뷰'가 있는데 멘토 중 한분으로 인터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여러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예비 공학도로써 세상을 넓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다양한 사람들 간의 세밀한 이해관계와 감정표현에 새로움을 느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책 쇼코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특히 서로 다른 문화권의 가족들에 대한 내용인 '신짜오 신짜오'가 감명깊었으며, 작가님께서 바라보시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등이 궁금해졌고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이에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인터뷰에 응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떤 답변이든 기쁘게,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제 메일 남겨드리며,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jyoung903@postech.ac.kr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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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혹시 몰라 질문도 함께 올립니다.

    첫 번째, 댓글로도 말씀드렸듯이 에는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각각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배경이 다채롭고 생생하며 감정이 섬세합니다. 다음 작품인 등등 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주로 무엇을 통해 작품에 대한 모티프를 얻으시나요?
    두 번째, 지금까지 쓰신 책들을 읽다 보면, 마음에 울림이 생기면서 책이 무언가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어떤 것일까요? (특정 책에서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세 번째, 지금까지의 여러 책에서 드러내신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꼭 주목받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이슈(관심 갖고 있는 이슈)가 있을까요?
    네 번째, 언제 글쓰기를 결심하게 되셨나요? 아직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확실함이 있는 대학생 새내기에게 진로에 대해 충고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섯 번째,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 과제로 소설 쓰기를 해보면서 저도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등단을 목표로 할 만큼 전문적으로 쓰고 싶은 것은 아니고, 그냥 제 마음을 풀어내고 싶습니다. 글을 쓸 때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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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4학년에 재학중인 윤로빈입니다.

    이번에 여성을 중심으로 한 한국 퀴어 콘텐츠에 대한 연구를 하고 다큐멘터리 제작을 기획중인데, 이에 대해 최은영님의 인터뷰를 꼭 담고 싶어 메일드립니다.

    , 등여성을 중심으로 한 서사를 주로 하는 최은영 작가님의 작품들을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최근 페미니즘이 부상하면서 많은 여성 퀴어 서사가 등장하는데 제작자님의 입장에서 한국의 여성퀴어 서사를 담는 과정이나 한계, 고민점 등은 어떨지 여쭙고싶습니다.

    만약 직접 찾아뵙는 대면 인터뷰가 어려우시다면 영상통화를 통한 인터뷰라도 꼭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여성들이 행복해지는 데 조금이나마 함께 할 수 있길 바라며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로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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